DX11(SM5)은 UE4에게 ‘업데이트’가 아니라 구조 전환이었다.
Compute Shader가 파이프라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Tessellation·PBR은 포토리얼리즘을 “실무”로 만들었다.
이전 글에서 다룬 DX11(SM5)의 등장은 UE4에게 단순한 라이브러리 업데이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UE3가 DX9 기반의 고정된 파이프라인에서 벗어나려 애썼다면, UE4는 Compute Shader와 Tessellation이라는 핵심 기능을 도입하며 '리얼타임 포토리얼리즘'에 도전했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렌더링 파이프라인의 파괴적 혁신
DX11(SM5)의 도입에서 가장 파괴적인 변화는 역시 Compute Shader(CS)의 등장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GPU가 정해진 그래픽스 파이프라인(VS / PS)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CS는 GPU에 고정 파이프라인 외 연산 모델을 제공했습니다.
- Deferred Shading의 고도화 (Tiled/Clustered): UE4는 수천 개 수준의 동적 광원을 다루기 위한 흐름에서 타일 / 클러스터 기반의 라이트 컬링 같은 접근과 함께 CS 활용이 중요한 선택지로 부상했습니다. 화면을 타일 단위로 나누고, 해당 타일에 영향을 주는 광원만 추려내 연산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Tiled Deferred Shading이 다수 광원 처리를 위한 대표 전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속도 향상을 넘어, 복잡한 실내외 환경에서도 라이팅 설계의 제약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Niagara와 GPU 시뮬레이션: 기존의 Cascade가 CPU의 연산 능력에 갇혀 수천 개의 파티클도 버거워했다면, UE4 후반부에 Niagara가 확장되면서, 특히 GPU 시뮬레이션 경로에서는 입자를 GPU에서 직접 처리하는 접근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Vector Field 추종이나 입자 간 상호작용 등, 이전보다 복잡한 동작을 실시간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가능해졌습니다.
- Post-Processing의 재정의: 후처리 영역에서는 PS/CS를 상황에 따라 혼용할 수 있게 되면서, 블러·DoF·시간축 누적(TAA)처럼 연산량이 큰 효과를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TAA는 이전 프레임의 정보를 현재 프레임에 투영(Reprojection)하는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며, 계단 현상을 제거하는 동시에 포토리얼리즘의 기반이 되는 부드러운 화질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작동했습니다.

디테일의 혁명과 Nanite를 향한 여정
DX11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Hardware Tessellation은 메시의 기하학적 복잡도를 GPU가 실시간으로 결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UE4에서 지형(Landscape)과 캐릭터 디테일을 표현하는 핵심 전략이 되었습니다.
- Displacement Mapping의 실현: 아티스트가 평면적인 노멀 맵(Normal Map)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SM5의 Hull Shader와 Domain Shader를 통해 실제 폴리곤을 쪼개고 솟아오르게 하는 Displacement Mapping이 가능해졌습니다. 덕분에 근거리에서의 돌과 흙의 질감은 눈속임이 아닌 실제 기하학적 굴곡을 가진 입체물로 변모했습니다.
- 최적화의 딜레마와 유산: 하지만 하드웨어 테셀레이션은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과도한 폴리곤 분할은 성능 저하를 일으켰고, 테셀레이션된 메시 간의 균열(Crack)이나 하드웨어 성능 편차는 개발자들에게 끝없는 최적화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의 고민인 '어떻게 하면 성능 손실 없이 무한한 폴리곤을 그릴 것인가' 는 훗날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여 수십억 개의 폴리곤을 처리하는 UE5 Nanite의 개념적 초석이 됩니다.
하드웨어 가속과 PBR(Physically Based Rendering)의 정착
DX11 세대에 이르러 GPU의 부동소수점 연산 성능과 메모리 대역폭이 유의미하게 향상되면서, UE4의 상징인 PBR(물리 기반 렌더링) 파이프라인이 실무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에너지 보존 원칙의 수치화: 과거에는 아티스트의 직관(속칭 '감')에 의존해 스펙큘러 값을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UE4 후기 파이프라인은 빛이 표면에 닿아 반사되고 흡수되는 물리적 법칙을 Roughness, Metallic, Specular라는 정제된 데이터로 제어하게 했습니다.
- 표준화된 제작 환경: 하드웨어 가속 덕분에 복잡한 BRDF(Bidirectional Reflectance Distribution Function) 모델을 실시간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어떠한 라이팅 환경에서도 재질이 일관되게 보인다'는 신뢰성을 확보해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티스트는 기술적 제약보다 창의적인 표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맺음말
결국 UE4 후기의 역사는 DX11(SM5) 세대의 제약을 엔진 소프트웨어가 어디까지 극대화하여 활용할 수 있는가를 증명해온 과정이었습니다.
Compute Shader를 통한 연산의 자유는 그래픽 파이프라인의 고정관념을 깨뜨렸고, 테셀레이션과 PBR의 정착은 실시간 렌더링과 오프라인 렌더링(CGI) 사이의 간극을 획기적으로 좁혀놓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포토리얼리즘’은, 사실 이 시기에 성능 제약을 전제로 한 최적화가 강하게 요구되던 흐름 위에서 성립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늘 새로운 갈증을 불러옵니다. DX11 기반의 하드웨어 테셀레이션은 성능과 디테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해야 했고, 수천 개의 광원을 처리하려는 시도는 동적 라이팅의 완전한 구현이라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DX11 시대의 고민과 유산은 이제 DirectX 12와 Vulkan, 그리고 이를 집대성한 UE5의 나나이트(Nanite)와 루멘(Lumen)으로 계승됩니다. 가상화된 마이크로 폴리곤 렌더링과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의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가 지나온 이 DX11의 연대기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대 그래픽스 기술의 가장 단단한 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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