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와 싸우는 제품은 다음 릴리스에 죽는다.
프론티어를 더 좋게 만드는 제품은 모델이 좋아질수록 같이 좋아진다.
어제 아침, 제 노션에는 아홉 칸짜리 기능 목록이 있었습니다. 스케줄 관리, 아침 브리핑, 웹 리서치, 개발 밑작업, 채널 연동, MCP 허브, 인텐트 라우터, 자유 대화, 라벨링·분류. 로컬 8B 모델 하나로 굴러가는 개인 AI 비서의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저녁에 같은 목록을 다시 열었을 때는 여덟 칸에 취소선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남은 것은 라벨링·분류 하나. 삭제는 여덟 개를 진행했고 단 하나만 유지했습니다. 삭제 분은 전부 상용 AI에 위임했습니다.
기능을 지웠는데 제품은 강해졌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이 왜 성립하는지가 오늘 글의 주제입니다. 프로젝트 이름은 ProjectDavid(이하 David), 옵시디언 호환 볼트를 스스로 정리하는 로컬 사서입니다.

1. 출발은 만능 비서였다 (The Wishlist)
로컬 8B 하나로 전부.
다만 맨손 출발은 아니었다.
제약 조건부터 적습니다. 로컬 8B(파라미터 80억) 단일 모델, VRAM(그래픽 메모리) 8GB. 클라우드 API 없이 이 안에서 아홉 개 기능이 전부 돌아야 한다는 것이 첫 스펙이었습니다.
밑천은 있었습니다. 이전 파이프라인에서 검증하고 온 원칙 네 개입니다.
- 해석은 LLM - 실행은 결정론
- 측정 우선 - 코드보다 측정값을 먼저 만든다
- 사람 개입은 없애지 않고, 가볍게 만든다
- 프롬프트에는 지시만 - 내용은 데이터로
원칙 1이 이 프로젝트의 척추입니다. LLM에게 전부 맡기면 비결정이 전 구간에 퍼집니다. 같은 문서를 여러 번 처리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자유 산문 출력은 파이프라인으로 검토할 수 없고, 계산과 조립까지 맡기면 확인 없이 조용히 틀립니다. 지난 글의 표현을 빌리면, 모델 출력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데모입니다.
그래서 해석과 실행을 가릅니다. 비결정은 필드 추출 한 칸에 격리하고, 실행은 결정론 코드가 잡아 같은 입력에는 같은 출력이 나오게 하고, 출력은 고정 폼이라 파이프라인 검토가 성립합니다. 뒤에 나올 채점 배터리(모델을 채점할 문제집)의 전제입니다. 비결정을 어디에 둘 것인가. 그 판단이 데모와 제품을 가릅니다.
작업 형식도 하루 종일 같았습니다. 아이디어(사람) → 검증(AI) → 수정 → 재검증 → 결정. 이 루프로 일곱 라운드를 돌았고, 아래는 그중 판이 바뀐 라운드들입니다.

2. 8B는 조건부로 성립한다 (Breaking Points)
약점은 프롬프트로 달래는 게 아니라,
설계에서 도려낸다
첫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아홉 개, 일반 사양(8B)으로 되는가.
검증의 답은 "가능, 단 조건부"였습니다. 활성 파라미터 4B급 모델로 제품이 성립하는 것은 이전 파이프라인에서 실측해둔 터라, 8B는 크기 면에서 여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종목입니다. 일반 사양(8B)이 구조적으로 깨지는 지점 세 개는 설계 단계에서 원천 차단해야 했습니다.
일반 사양(8B)이 깨지는 지점 회피 구조
| 여러 단계 자율 계획 | 자율 루프 금지 — 순서는 코드가 소유 |
| 넓은 도구 선택 | 제한된 선택지 + logprob 마진(선택지별 확신도 차이)으로 판정 |
| 계산 · 장문 일관성 | LLM은 필드 추출까지만 — 조립은 결정론 코드 |
세 행의 수법은 같습니다. 약점을 달래는 게 아니라 도려내는 것. 모델이 작을수록, 데이터 배치가 똑똑해야 합니다.
3. 격차는 없애는 게 아니라 옮긴다 (Gap Transformation)
위험한 건 확인이 뜨는 쪽이 아니라,
확인 없이 조용히 틀리는 쪽이다
성립한다는 답을 받고, 격차를 세 번 찔렀습니다.
"Haiku보다 아래지?" — 맞다. 모든 면에서.
"그럼 라우팅은 8B가 낫다는 건가?" — 아니다. 일을 쉽게 깎아, 격차가 안 드러나게 한 것.
"내 요청 처리엔 문제없다는 건가?" — 없다. 격차를 옮겨놨으니까.
두 번째 답의 정정이 이 라운드의 수확입니다. 격차는 라우팅에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라우팅이라는 과제가 충분히 쉬워서, 격차가 제품 품질로 전이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격차는 없애는 대상이 아니라 옮기는 대상이 됩니다.
- 해석 격차 → 확인 횟수로 (마찰)
- 문장 격차 → 밋밋함으로 (미감)
- 에이전틱 격차 → 옮길 곳 없음. 해당 기능 금지
품질 지표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오실행 0 + 확인율 상한. 라운드 넷을 지나며 v1 아키텍처가 확정됐습니다. 사용자 의도 분류 + 결정론 파이프라인 + 확인 카드 + 저장 3층. 추출 필드 설계와 채점 세팅, 모델 검증까지 이날 진행했습니다. 모델 선정전은 실측 숫자와 함께 따로 한 편으로 쓰겠습니다.
여기까지가 하루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이 설계의 대부분이 지워집니다.
4. 축소가 아니라 논지의 완성이다 (The Pivot)
버린 것은 상용 AI가 더 잘하는 것.
남긴 것은 구조적으로 못 하는 것
이번에는 제가 제안을 냈습니다.
"비서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다. 리서치·자료 정리·바이브코딩은 상용 AI로 하면 된다. 상용 AI가 일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근거는 실사용 관찰이었습니다. 직접 써보니, Claude도 ChatGPT도 분류는 힘들어하더라는 것.
검증의 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축소가 아니라 논지의 완성이라는 것. 상용 AI가 분류에 약한 이유는 지능이 아니라 구조에 있고, 그 구조는 셋입니다.
첫째, 기억이 세션마다 리셋됩니다. 분류 기준을 매번 재발명합니다. 어제 세운 규칙의 연속성이 없습니다.
둘째, 태그 어휘가 발산합니다. #ai, #AI, #인공지능이 한 볼트 안에서 공존합니다. 정규화의 주체가 없으면 어휘는 반드시 갈라집니다.
셋째, 컨텍스트 비용이 누적됩니다. 일관성을 지키려면 폴더 전체를 매번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 비용은 문서 수에 비례해 늘어납니다.
셋을 접으면 공식이 나옵니다.
분류의 품질 = 일관성.
일관성 = 리셋되지 않는 상태 + 결정론.
상용 AI가 구조적으로 못 갖는 것이고, 로컬 상주 데몬이 기본으로 갖는 것입니다.
5. 삭제 8, 유지 1 (The Verdict)
판정 축은 현재 성능이 아니라 구조.
구조 비교는 다음 릴리스에 뒤집히지 않는다
판정 기준이 그래서 이렇게 섰습니다.
- 상용 AI가 더 잘하는 기능 → 전부 삭제
- 상용 AI가 구조적으로 못 하는 기능 → 유지
이 기준으로 아홉 칸을 채점한 결과가 서두의 취소선입니다. 스케줄과 브리핑은 상용 AI의 예약 작업이, 리서치는 웹 검색이 더 잘합니다. 라우터와 자유 대화는 상용 AI 그 자체입니다. 여덟 개가 지워졌고, 오전 내내 세운 라우터와 확인 카드도 같은 판정으로 함께 지워졌습니다. 매몰비용보다 판정이 앞섭니다.
살아남은 것은 라벨링·분류 하나. 아홉 개 중 상용 AI 위임이 성립하지 않는 유일한 항목입니다. 확인 카드는 죽었지만 그 패턴은 리뷰 큐로 생존했습니다. 확신 못 하면 조용히 틀리는 대신 리뷰 큐에 쌓아둡니다.
역할 분담은 이렇게 확정됐습니다.
역할 담당
| David = 사서 | 분류, 배치, 색인, 일관성 |
| 상용 AI = 연구원 | 리서치, 요약, 기획, 저작 |
| 유저 = 편집장 | 분류 체계 승인, 리뷰 큐 판정 |
글을 쓰는 AI가 아니라, 꽂아두는 AI입니다.
LLM 위키가 된 것입니다.
6. 여기까지는 전부 연역이다 (The Honest Brake)
연역은 반박할 데이터가 없다.
아름다운 논리일수록 위험하다
정직하게 적어둡니다. 여기까지는 전부 연역입니다. 코드 0줄, 처리한 문서 0건.
그래서 다음 글부터는 숫자로 말하겠습니다. 오분류 0. 리뷰 큐로 넘긴 것은 실패가 아니고, 큐 없이 틀린 확정만 실패로 셉니다. 같은 파일 3번이면 3번 같은 결과(재현성 100%). 그리고 리뷰 큐 상한. 검토 대기함이 넘치면 그것도 실패입니다. 기준에 못 미치면, 미달한 숫자를 그대로 공개하겠습니다.
마치며: 다음은 게이트다
David는 게이트 단위로 만듭니다. 결정 로그, 배터리 숫자, 게이트 데모와 전 과정을 공개하고, 저장소는 MIT 라이선스로 엽니다.
서두의 문장으로 돌아옵니다. 프론티어와 싸우는 제품은 다음 릴리스에 죽습니다. 프론티어를 더 좋게 만드는 제품은 모델이 좋아질수록 같이 좋아집니다. David가 서려는 자리는 후자입니다.
다음 글은 이날의 나머지 절반입니다. 검증은 역방향으로도 작동했습니다. AI가 낸 설계에서 원칙 위반 세 건을 검출한 기록. 템플릿 속 개인 데이터, 공개될 뻔한 테스트 케이스, 그리고 출처 하나짜리 '표준'.
이 글에서 다룬 고정 함수 분류층은 ProjectDavid의 일부입니다.
전체를 바닥부터 만드는 과정은 강의 3부작으로 정리하고 있고, 10월에 오픈 예정입니다.
→ 오픈 알림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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